2021년 7월 가을이 수난시대
[네이버 블로그에서 옮겨온 글 2021. 7. 27 작성]
시골집 첫날

참으로 오랫만에 포스팅을 한다.
그동안의 일들은 시골살이 카테고리에서 정리하기로 한다.
갑자기 일이 많아졌고 조만간 치러야 할 시험도 있어
시간이 빠듯하다.
아직 짐도 다 풀지 못했지만 얼른 지난 일들과 생각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다 잊혀지거나 왜곡될 것 같아 틈을 내서라도 조금씩 기록을 해야겠다.
그래서 오늘은 가을이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시골로 이사를 오기 전 가을이와 인천 을왕리로 여행을 갔었다.
이사를 하느라 가을이가 많이 힘들어했다.
그래서 가을이를 위해서 바다로 콧바람을 쐬러 가기로 했던 거였다.
이사 며칠 전부터 가을이는 없던 분리불안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가을이만 두고 집을 나갈 수가 없고, 어디를 가도 데리고
다녀야 하는 실정이다.
그래서 어딜 제대로 다닐 수가 없다. 하,,,,,
차에도 혼자 있으려고 하지를 않고 게다가
이 곳은 가장 큰 마트 조차도 지하 주차장이 없어서
이 땡볕에 아이를 차에 홀로 두고 볼일을 볼 수가 없다.
시골집 첫날-엄마가 청소하는 동안 고구마 쫀디기 씹기
동네 하나로마트에 물을 사러 들렀는데 고구마 쫀디기가 있어서 한 봉지 사봤다.
나는 별로인데 가을이가 좋아해서 다행이다.
물론 가을이는 물 한병과 쫀디기 사서 돌아올 때까지
동네가 떠나가라 짖고 있었다.
이 더운 날 그리 짖어대면 얼마나 힘들까! 에구....
귀촌 비글, 시골집 첫날 석양을 맞는 가을이
가을이는 지난 며칠간의 상황들이 이해가 되지 않는가보다.
잘 살던 집을 떠났고 갑자기 아빠와 떨어졌고
절에서 며칠 눈치보며 지내다가
갑자기 허름한 곳으로 와서는
이제부터 살아야 할 우리집이야! 라고 하니
가을이는 혼란스럽단다.
그렇지만,
"가을아, 너가 좋아하는 버라이어티한 큼큼 퀘퀘한
냄새로 가득한 이 곳을 너는
조만간 사랑하게 될거야!
그러니까 제발 스마일 해 다오!!!"
주문한 침대가 오기까지 아직 2주를 기다려야 한다.
지난 겨울 거금 들여서 마련한 목화솜 이불을 깔고
요커버는 어느 짐에 박혀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홑이불 하나 깔아 뒀더니 저렇게 누워서 잘 잔다.
다음 날 요 커버 찾아 씌워 목화솜 이불을 개켜 두었는데
그 높은 데를
굳이 올라가서 자는 너는 아무래도
전생에 공주였나보다.
저녁먹고 산책 中 응가 한 점...
저 쪽에 키가 크신 어르신이 다가오는데
아는사람인 줄 알고 한참을 바라본다.
다음날 받은 택배 박스들.
서울에서는 밤에 주문하고도 다음 날 바로 받는 그 유명한 로켓배송!
여기서는 기본 +2일이다.
미리 주문한 이동식 옷장, 인덕션. 기타 등등등등.....
택배아저씨 왈 "뭔 택배가 이렇게 많아요??????"
ㅋㅋㅋㅋㅋ
주민의 80퍼센트 이상이 할배, 할매(여기서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갱상도 사투리)들이라 택배 주문이 거의 없었나보다.
근데 갑자기 한꺼번에 대여섯 박스가 오니 아저씨도 신기하신지
한 말씀 건네신다.
그 이후로도 우리 집으로의 택배박스 행렬은 거의 매일 이어졌다.
그와 함께 내 통장 잔고는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다.ㅜ
며칠 택배를 받아보며 느낀 신기한 점은,
서울에서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점이다.
서울에서는 보통 택배 박스를 엘베에서
문 앞으로 휘리릭 던져 버리면 땡인데
여기는 대문을 열고 거실 안 까지 두 손으로 가져다 주신다.
황송하게도....ㅎ
이 더운 날...
가을이 표정이 어제보다 좋아보여 나도 좋다.
30도가 넘는 폭염이 이어지는 요즘.
아침부터 폭염주의보가 발령되었다며
노약자와 어린이(어린이 딱 한 번 봄)는 외출을 삼가라고
고래고래 방송을 하고 다니시는데,
가을이는 왜?, 도대체 왜? 땡볕에 저러고 있는 걸까?
결국 5분도 안 되어 안으로 들어오고 말았지만...
제 침대를 꺼내 줬더니 좋은가보다.
너도 소유욕이 꽤 있구나!
"You are so possessive." 라던, 나를 확 깨어나게 했던 이스라엘인 Ran의 말이 생각난다.
아마 마날리로 향하던 오버나잇 버스에서 였을거다.
전날, 시장 떡집에 시루떡 5박스 맞춰 놓은 것 기다리는 중.
저녁에는 이장님 사모님의 안내를 받으며
가을이와 집집마다 떡돌이를 했다.
떡 박스 들고 목줄까지 잡고 다닐 수가 없어서
줄을 풀어 줬더니 남의 집 앞 마당과 뒤란을
제 집처럼 쑤시고 다녔는데도 오히려
개가 참 이쁘다며 이쁘게 봐 주신 어르신들
참 고맙습니데이,ㅎㅎ
♥♥♥이렇게 새 주민이 되었다는 신고식을 마치고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내 집이라는 마음은 들지 않고 많이 낯설다.
아마 가을이 마음도 나와 같겠지 아직은...
내 마음이 가을이에게 가 닿을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가을아, 마마수기는 지하철 계단에서 너를
처음 본 그 순간 부터 9년이 흐른 이 날까지
단 한번도 너와 끝까지 함께 할 생각을 접은 적이 없단다.
제발 분리불안 좀 없애보자 가을아!!!
그리고 우리 더 강해지고, 크하자크, 샤한샤!!!
몸도 마음도...
2021년 7월 가을이 수난시대
2021년 7월 가을이와 나는 경남의 한 면소재지로 이사를 왔다. 흔히 말하는 유행어처럼 번지는 그 단어. 귀촌을 했다. 두 달여 동안 자잘한 사건사고가 많았고 그런 자잘한 사고들에 겁이 났다. 액땜하는 건가? 하고 말이다.
지난 달, 나는 간만에 이틀이나 앓아 누웠어야 할 정도로 많이 아팠고(결국 병원가서 관련 검사 다 받고 결과 이상없음) 가을이는 안충이 생겨 병원가서 마취하고 안충제거 치료를 받았다.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일어난다고 했었나? 냉동 고기를 떼려다가 가위에 엄지손가락이 찢어져 네 바늘을 꿰맸다.
그리고 이 달, 9월 8일 가을이가 진돗개에게 물렸다. 여느때처럼 저녁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 흰 개 세마리가 저만치 횡으로 열맞춰 우리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가운데 덩치 큰 놈이 진돗개였고 양 쪽 두 마리는 모르겠다. 견종을 파악하기도 전에 일이 터져 버렸기 때문이다. 예감이 좋지 않아 가을이를 불렀지만, 이런 결정적인 순간에는 내 말이 들리지가 않는지, 평소의 착한 가을이라면 쪼르르 달려왔을텐데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들에게 다가갔을까? 도대체 왜? 겁쟁이 소심이가 도대체 왜? 호기심을 억누를 수가 없어서??? 비겁하기 싫어서? 한번도 험한 꼴을 당해 보지 않아 찬물, 더운 물 가릴 줄을 몰라서? 정말 모르겠다 너란 놈.
이 놈들을 쫓아버리기에 나는 너무나 멀리 있었다. 그리고 진돗개는 순간 가을이를 단숨에 덥쳤다. 가을이 목덜미를 물어 좌로 우로 흔들고 바닥에 내치고.... 하~ 지금 생각해도 화나고 마음이 아프고 속이 찢어진다. 동네가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이놈들을 향해 뛰었다. 내가 가까워지자 물었던 가을이를 두고 세 놈이 동시에 도망을 갔다. 천만다행으로 부러지거나 피가 난 곳은 없었다. 단지 그 놈의 더러운 침만 가을이 목덜미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놈의 진돗개가 너무 미웠다. 걸리면 정말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진돗개를 입양하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 역시 싹 사라졌다.)
당연한 말이지만, 가을이가 많이 놀랬다. 물론 나도 많이 놀랬다. 가을이가 죽는 줄 알았으니까. 그런데 그날 밤 너무 요상한 똥파리가 가을이를 또 패닉에 빠지게 했고 그 날은 내가 손가락을 다쳤던 날보다 더 힘든 하루였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극한의 공포에 치달아 현실파악을 못 하게 된다면 순간적으로 미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겁에 질려 미친듯 행동하는 가을이를 안심시키는게 너무 힘들었다. 서로의 말을 알아 들을 수만 있다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돗개 때문에 놀란 가을이를 간신히 안정시키고 군고구마로 달래 주고 있었는데 그 요상한 똥파리 소리에 가을이는 진돗개에 물렷을 때보다 더 극심한 공포반응을 보였다. 요상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소리만 엄청 크게 "위~잉, 위~잉" 나면서 도대체 어디 있는지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 이 쪽에서 나다가 이내 저 쪽에서 "위~잉". 솔직히 나도 많이 무서웠다.
가을이는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밖으로 나가려했다. 내가 문을 닫아 버리자 거실문을 긁어대며 짖기 시작했다. 일부러 짖으래도 짖지를 못 하는 아이인데, 그날 밤 짖는 모습은 정말 반 미치광이 같았다. 안쓰러워서 눈물이 났다. 가을이를 품에 안았다. 아이를 진정시킬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내 품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가을이를 죽을힘을 다해 꽉 안았다. 눈물이 났다. 왜인지 알 수 없는 눈물이...계속 흘렀다.
그렇게 한참동안 가을이를 안고 있었고 어느새 가을이의 거친 숨이 조금씩 잦아 들었다. 긴장과 공포감이 조금씩 해소가 되는 듯 보였다. 내 팔에 고개를 늘어뜨린채 쉬는 모습에 감사할 뿐이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결국 그 똥파리를 끝장을 내고 나서야 끝이 났다. 시골에 살면서 불살생을 지킨다는 건 너무너무 힘든 일이다.
이 일이 있던 삼일 째, 지난 토요일, 벼루고 벼루던 동호숲 유원지를 갔었다. 그 곳에서 또 일이 터졌다. 동호숲 유원지는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유원지라고 하기에는 규모도 코딱지만했고 관리도 안 되어 쓰레기 더미도 군데군데, 사방에 풀 천지였다.
퉁명스런 꼰대 할머니를 뒤로 한채 "동호숲 영원히 안녕~" 하면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이 곳으로 오는 길에 앞유리 먼지가 계속 신경 쓰였던지라 출발 전 앞유리만이라도 닦고 싶었다. 가을이에게 물을 먹인 후 뒷좌석 가을이자리에 태우고 빠르게 유리창을 닦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철컥!소리와 함께 차문이 잠겼다. 내 귀를 의심했다. 사이드미러 두 개가 접히는 걸 보니 맞긴 맞구나! 하면서도 아니기를 바랬다. 손잡이를 당겨보았다. 잠겼다. 미칠 것 같았다.
운전석에 무심코 던져둔 키를 가을이가 앞좌석으로 점프하면서 순간 발로 밟아 버린 것이다.
왜??????
도대체 왜???????????? 늘, 항상, 언제나 얌전히 뒤에 잘 있던 네가 오늘따라 앞으로 넘어 온거니 왜?
왜 나는 오늘따라 키를 차 안에 생각없이 던져 둔 것이며, 왜 차유리는 조금 열어 두지 않은 것일까? 어쩌면 이리도 모든것이 완벽하게 어그러질 수 있을까? 경이롭다. 참으로... 이 상황을 풀기 위해 필요한 단 하나라도 내 주머니에 있었더라면... 그러나 모든 것들이 잠겨버린 차 안에 있었다. 차키, 집키(집 책상 서랍에 차키가 하나 더 있다), 휴대폰과 지갑 모두 싹 다 말이다. 내 손에 있던 것은 분무기와 파란색 걸레 뿐이었다. 바보같은 나 때문에 화가 났다. 엄청 꼼꼼한 줄, 매 순간 정신차리고 사는 줄 알았는데 아주 정신을 길바닥에 흘리고 다니고 있었구나, 나란 사람.....
돌아버릴 것 같았지만 얼른 정신을 차려야했다. 차에 갇혀버린 가을이를 위해서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