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다. 근데 이곳 날씨는 7월 한여름 날씨다. 30도를 넘어 하루종일 푹푹쪘다.
거의 4개월여만에 블로그에 로그인을 해본다.
지옥같은 겨울을 지내며 손가락이 시려 자판을 두드리기 싫다는 핑계로 미루던것이 어느새 버릇이 되고말아
봄이 되어서도 미루고 미루다가 이대로는 그동안 저장한 사진들이 뒤죽박죽 처치가 곤란해질것 같아 큰맘 ㅎ 먹고
사진도 정리할 겸 기록을 하기로 했다( 왓챠에서 보다 말았던 [적벽대전]을 마저 보려고 했었으나...)
정말이지 내 생애 이번처럼 봄을 고대하고 고대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나는 봄을 싫어했다. 아마 30대 초반까지도...
명절분위기나 크리스마스분위기같은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싫어했던지라
봄이라며 들떠서 흥에 겨워하는 분위기 역시 짜증스럽게 느껴졌던 어둡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아마도 나와 내 상황은 변한게 없는데
세상만 들떠서 좋아라 날뛰는게 꼴불견으로 느껴지고 질투가 나서 그랬지싶다.
그러나 이번 봄은 너무 다르다.
무시무시하게 추웠던 겨울을 버텨내고(진실로 "버텨냈다" ) 맞이하는 봄인지라 더 반가왔다.
인생의 반평생을 서울의 외풍없고 따뜻한 아파트에서만 살던 나와 가을이(가을이는 아기때부터 9살까지 전생애를 아파트에서만 살았고)에게 보일러조차 안 되는 이곳의 겨울은 정말 무시무시하게 추웠기 때문이다.
마을에 있는 집이지만 집뒤와 양옆이 허허벌판(밭)이라 골바람을 막아줄 바람막이가 전혀 없는 집이라
거의 매일 쌩쌩부는 바람에 집 전체가 흔들렸다.
골바람 맞으면 골병든다고 골짜기는 피해 집을 지으라는 풍수 유튜브 방송이 바람소리가 날때마다 항상 생각났다.
바람이 불어도 너무 사악하게 불어댄다. ㅠㅠ 바람아 제발 쫌 그만!!!!!!!
근데 이 푹푹찌는 봄!날씨에도 하루 몇번씩 회오리같은 바람이 잠깐씩 훑고 지나간다.
읍에 있는 동물병원 원장님말씀이 이곳은 기가 쎄서 사람이 살기가 힘든 곳이라 했었다.
어쩌면 그 분의 말씀이 맞는 것도 같다.
내가 가봤던 다른 시골 마을들보다 유난히 힘들게 사시는 분들이 많은 것도 아마 그런 이유가 아닐까?
어쨌든 잠깐이지만 봄이 너무나 반가왔고 행복했고 만끽했다.
가을이와 드라이브도 많이 다녔고 이곳저곳 못가본 곳들(반려견동행 되는 곳들만)을
다녀봤다.
부처님오신날(당일은 너무 붐빌것이니 전날)을 맞이해 우두산에 있는 고견사도 들르고
어버이날엔 충주 엄마산소엘 다녀왔다(차가 엄청나게 밀렸다).
고령에 있는 대성모터스(티몬에서 주문한 타이어로 타이어교체위해)에 간날 우연히 알게 된 고아리고분군.
이곳이 고령에서는 유명한 곳인것같다.
고분군뿐아니라 캠핑사이트도 있고 주변이 꽤 넓어서 가을이와 둘러보기 참 좋은 곳이었다.
이후 고속도로 타고 싶을 때면 종종 들르는 코스가 되었다.
우두산에 출렁다리를 보러 사람들이 많이 온다. 관광버스로 사람들을 엄청나게 실어나른다.
사람들 바글거리는 곳은 가능하다면 피해 다니고 싶은지라 이렇게 붐비는 날에는 이 산에 갈수가 없다.
일주일에 두세번은 가곤 했는데 관광객이 갑자기 늘어(코로나방역이 풀린이후라 더)산이 아니라 시장통이 되어버렸고 주차문제도 심각해서 찾아낸 이곳. 비계산
우두산 가는 길에 얼핏 비계산이라는 이정표를 본 적이 있었는데 주차장이 보이지 않아 그냥 지나치기만 했었다.
혹시나 하고 이번에 가봤는데 너무 좋았다.
주차할 공터도 있고 인적이 거의 없어 더 좋았다.
이렇게 하나하나 우리만의 아지트를 발견하는 일이 참 재미지다.
그리고 창포원의 봄
습자지처럼 앏고 여린 꽃잎이 제각각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이 천상 여자같은 꽃이다.
이파리도 없이 가녀린 줄기 끝에 달린 큰 꽃은 그것만으로도 존재감 뿜뿜이건만
여리한 이파리들의 움직임은 고혹적이어서 여려도 그 안에 열정을 품은 성숙한 여인을 연상시키는 꽃이다.
이처럼 양귀비에 감탄하기도 처음이다.
분홍양귀비도 있었는데 샤방한 연분홍 원피스를 입은 소녀같았다.
어릴적 우리집 뒤란에는 이 꽃이 많았다(요즘 충주에서는 어떻게 부르는지 모르지만 그때는 함박꽃이라 불렀다)
이 꽃을 보면 엄마가 생각난다.
그래서 어버이날 엄마를 보러 가기로 했다.
왠지 촌스러워서 어릴땐 싫어했는데 참 이쁘다 지금보니.
익숙한 향기에 이끌려 와보니 토끼풀. 꽃이 만발했다.
음~~~ 향이 너무 좋다. 창포원에 와서 지대로 향수에 빠져보는 날이다.
어버이날 중부내륙은 어마어마하게 밀리고 사고도 많았었다.
나에게도 아찔한 일이 있었다. 안전거리유지는 필수이고 과속은 금물임을 되새김했다.
엄마산소 가는 길이 헛갈려 조금 헤맸는데 그래도 걱정했던 것보다 쉽게 찾아 감사했다.
나도 가을이도 같이 늙어 가는구나!
저쪽으로 보이는 저 산아래 작은 댐(보라고 해야하나)이 있는데 동네 아이들과 팬티만 입고 수영하며 놀았던 곳이며
저 산과 마을을 잇는 작은 다리는 내가 6살에 뒤로 걷기하며 놀다가(엄마 기다리며) 떨어진 곳이다.
이때 이마가 찢어졌고 아직도 꽤 큰 흉터가 남아있다.
그런데 그 다리도 지금보니 코딱지만하다 ㅎㅎ
골목골목 길들도 그때는 모두 넓고 길게 보였는데 지금보니 작고 좁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상상조차 못했을텐데 내가 이 나이를 먹는 날이 오기는 오는구나.
봄을 이토록 애타게 기다린적도 또 이번처럼 심하게 봄을 탄적도 처음인것 같다.
마음이 그냥 몰랑몰랑한데 뭐라 표현하기 힘든, 그치만 싫지는 않은, 이런 기분 참 오랫만이다.
그와 함께 많은 것들이 달라보이고 다른 차원에서 보이고
예전에 가졌던 많은 편견이 깨지고 더 개방됨을 느낀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더 지혜로운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맞았던 봄과는 내게는 많이 달랐던 2022년의 봄, 5월이 채 가기도 전에
30도를 넘는 한여름더위가 이어지며 작별을 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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