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수행

사띠-객관적으로 바라보기

달향~ 2020. 5. 22. 10:46

사띠빳사나 수행은 몸과 마음의 과정을 자기 동일화하는 것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의 마음은 들끓게 될까요? 그것은 그들이 몸과 마음을 자기 동일시, 즉, "이것이 '나'의 몸과 마음이며, '나'는 지금 이렇게 되어 있다"라고 의심 없이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탐욕, 감각적 욕망, 집착 혹은 좌절, 성냄과 자만, 두려움, 인색함 등이 일어났을 때, 가장 중요한 점은 그것들을 '나'라는 주체가 보는 것이 아니고, 자연적인 현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관념적으로 '나'는 없다는 것을 적용시키려는 것은 또 다른 독소가 될 뿐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것들을 극복하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사띠(객관적으로 알아차리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극복하려는 것 자체가 '나'를 관념화하고 있는 결과입니다.

 

 

현상들을 '나'의 마음이 아닌 단지 마음의 작용으로 응시하십시오. 그 마음이 '좋든' 혹은 '나쁘든' 단지 그것을 보십시오. 그것은 스스로에 의해 일어난 것이 아니고, 일어날 충분한 조건이 있기 때문에 일어난 것임을 보십시오. '본체, 실체, 나, 나의 것'이란 없습니다. 

 

자기 동일화가 모든 번뇌를 더욱 강하게 만듭니다.

마음이 들끓고 있는 것은 다만 '나'의 또 다른 '현상'일 뿐입니다. 마음이 들끓지 않는다면, 다시 말해서 마음을 지켜볼 때 자기 동일화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것은 마음이 평온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행자는 흥미, 조용한, 분명함등올 탐욕 등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즉 무상. 고. 무아.  연기 등의 담마를 보게 됩니다. 자기 동일화가 모든 번뇌를 더욱 강하게 만듭니다.

 

탐욕, 성냄, 인색함, 들끓음, 미워함, 싫어함, 시기, 질투등의 불건전한 마음들이 나타나거나, 희열, 고요함, 삼매, 평온, 평화스러움 등의 건전한 마음들이 나타낫을 때 그것들을 자기 동일화시키지 마십시오. 단지 그냥 그것들로부터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면, 처음에는 그것들에 집착하는 '나'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점점 그러한 성향들 혹은 집착하는 마음들이 사라지면서 그 어디에도 '나'가 없음을 확연히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수행이 진전됨에 따라 집착, 욕망, 꿈, 바람들로부터 벗어납니다. 환영에서 깨어남은, 그것이 실망과 관계되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고통스러우나 나중에는 마음을 자유롭게 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현실적으로 만듭니다. 인생은 동화가 아닙니다. 환영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되기 위해서 우리는 또한 반드시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삶에서 습관적으로 행해 왔던 낡은 허물을 벗어버리고, 보다 의미심장한 새로운 존재로 성장해야 합니다. 낡은 허물을 벗는 것은 항상 고통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하고 매우 상처받기 쉽고 과민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수행하는 과정에서 모든 과거의 기억들과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여기의 순간순간을 사띠하고 사는 것만이 전부입니다. 미래는 담마 그 자체가 돌볼 것입니다. 

 

출처 <사띠빳타나 수행> 우 냐나로까 사야도 법문, 비구 감비라냐나 정리 中에서